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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돈 날리게 생겼네.” 아침 잠결에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2개월 내에 신청해야 1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날짜를 놓친 것이다. “어, 여기 둔 줄 알았는데 어딨지?” 당황 섞인 남편 목소리에 집에 흩어져 있는 도장과 서류들을 함께 찾아 챙겼다. 남편은 일단 출근해서 지금이라도 신청이 가능한지 담당기관에 문의해 보겠다고 했다.
정신없는 출근길을 배웅하고 돌아서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2개월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늦은 축을 잡았는지, 손해 볼 것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 남편은 직장부서를 옮겨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해도 갔다. 출근하고 있을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혹시 안 되더라도 이것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남편에게 괜찮다고는 했지만 내 마음이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어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러 김형태 교수님의 칼럼집을 읽었는데 이런 일화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나는 2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참 많은 손님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손님이 한 분 있다.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저녁 무렵에 마흔 정도로 보이는 남자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고 아내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 손님은 남성용 물건이 아니라 여성용 지갑이 진열된 곳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손님이 원하는 비슷한 물건이 있어 그것을 사기로 했다. 값을 치른 다음, 손님은 만원짜리 지폐를 몇 장인가 세더니 방금 구입한 지갑 안에다 넣었다. 그리고는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지갑만 사드려도 좋아할텐데…. 부인의 생일이신가 봐요”하면서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손님은 “아니에요. 집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와서 너무 우울해하기에 위로해 주려고요. 잃어버린 것과 같은 지갑에 잃어버린 만큼의 돈을 넣었으니 이제는 깨끗이 잊고 힘내라고요” 하면서 웃었다. 손님은 곱게 포장된 지갑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는 가게 문을 나섰다. 아내와 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건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냐며 그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 뒤, 나는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 손님을 떠올린다. 그 손님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분이다.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이란 이런 것이다.…」
본교 교수·교육학과 그러고 보니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나의 실수를 덮어주고 다독여준 우리의 일화들이 떠올랐다. 내가 운전을 하다가 벽을 박아 차가 긁혔을 때, 남편이 말없이 나가서 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는, 비슷한 색이라 표 안 난다고, 돈 안 들여도 된다고 위로해준 적이 있었다. 물론 덧칠한 표가 확 났지만 볼 때마다 서로 웃으며 잘 타고 다녔다. 기억이 나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편에게 고마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받아들여진’경험이 내 안에 이렇게 오래 감사하게 남아있구나. 원래 위클리 ‘프리즘’ 원고는 새해를 맞아 도전적인 주제로 원고의 반을 써 두었었는데, 새해에 나에게 필요한 주제는 ‘들이받음’이 아니라 ‘받아들임’인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더 속상할 상대방을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 올 한 해 받아들이며 살겠노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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