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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무엇인가를 배우다가 돌아간다. 이러한 ‘평생학습’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나 행정적인 차원에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운영하게 된 것은 도시 재생이 한창 유행했던 시절 ‘창조도시’이슈로 거슬러올라 갈 수 있다. 창조성과 도시에 관해 논했던 찰스 랜드리(C. Landry)가 있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그 실마리가 발견된다.

그는 창조 요소로서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성(Tolerance)이 도시 성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 장 ‘학습하는 도시를 향해서’라는 주제에서는 ‘학습도시’가 ‘창조도시’보다 미래에 더 강한 메타포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가져와 연구단체와 지자체가 연합해 프로젝트를 만들고 ‘학습하는 도시’의 개념을 내세워 각 시와 구에서 평생학습관을 세웠다. 비록 학문적 깊이를 요하는 강좌는 드물지만, 문화적 감성을 충족시키는 과목들로 채우고 있다. 이보다 앞서는 각 대학마다 평생교육원이 자리하고 있고, 또 상업적인 목적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각종 몰의 문화센터들이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 왔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렇게 배우는 것에 목말라하는 것일까? 필자의 경우를 보자. 필자는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지만 졸업 후에는 인문학 연구소에서 인문학과 연계된 연구를 한 지가 십 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두 학문은 성격이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간단하게 비교해보자면, 공학이 실험한 내용을 되도록이면 간결하게 표현하면서 불필요한 말을 깎아내는 작업이라면, 인문학은 한 주제를 놓고 다양한 말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다른 학문적 경향성에, 한 번도 고심해 보지 않았던 주제를 놓고 말을 이어가자니, 공부해야 할 영역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저서들과 논문들을 찾아 불철주야로 읽어댔지만, 이 모호하고 철학적인 개념들을 습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박사 논문을 쓸 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힘든 여정을 거친다. 깐깐한 지도교수를 만나면 더욱 그러할 테다. 그렇지만 논문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오히려 편한 작업이었음을 졸업 후에야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 글의 주제를 선정하거나, 논문을 써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고 약간의 요령을 익힌 정도가 되니, 어릴 적 꿈꾸었던 음악에 대한 학습욕망이 새롭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새롭게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영상과 미디어 관련으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모범생 콤플렉스로 인해 무언가를 배우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강박적 심리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에 대한 지(知)적 충족감인지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학습적인 것이든, 직업적인 것이든 간에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해왔던 모든 것을 접고, 새로운 분야를 시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을 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지적 허영’이라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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