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주변인들 우려와 달리
자유 만끽하느라 바빠
백수과로사 표본이 될 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자”

 

 

 

지난 12월 어느 날 전 직장 동료 분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오래된 골목의 아주 오래된 식당에서 오래된 지인들과의 술 한잔은 그 자체가 낭만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한참 수다를 떨던 끝에 그만 정년퇴직 후 생활에 대해 글을 써보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특별히 내세워 이야기할 만한 건 없는데…. 하지만 딱 잘라 거절은 못하고 그냥 지금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을 이야기해 보자고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퇴직 전후 주변 사람들은 내게, 앞으로 심심하지 않겠냐, 한 달만 놀면 지겨워질 거다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7개월 동안 지겹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주 4일간 나를 위한 정기적인 일정이 있는 데다 퇴직 전 예상했던 대로 여러 개의 모임과 친구들과의 만남, 미뤄두었던 일 처리, 정기적인 병원 검진, 부모님들 관련 일로 시간표가 빽빽하다. 해외 여행과 국내 여행도 다녀왔으니 밥 차려줄 자식이나 모시고 사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백수과로사의 표본이 될 판이다.


그렇다고 늘 밖으로 돌아다녀서 심심하지 않은 건 아니다. 종일 집에 있어도 ―아주 가끔이지만― 혼자 마음대로 있을 수 있으니 너무 좋다. 그리고 별것도 없는 동네 길에서도, 하늘도 쳐다보고 가로수 나뭇가지, 길가 세탁소, 교회, 카페, 길고양이…를 쳐다보며 한가로이 걸을 때면 발걸음이 저절로 가볍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퇴직 후의 주된 생활은 퇴직 전 예상과 많이 다르지는 않으나 예상치 못한 일들도 꽤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 일이다. 어쩌다보니 여러 번의 ‘설치’와 ‘가입’을 거쳐, 여러 개의 닉네임, 글쓰기와 댓글쓰기 등등으로 나름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 많이 버벅거리기도 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갔다 해도 나의 생활상을 게시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오프라인 세상에서만 살던 나로서는 또 하나의 세상이 생겨났으니 안 그래도 자칭 올빼미가 아주 날밤을 샌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것들도 있었으니 많이 망설여지기는 했으나 결과는 생각보다 즐거웠고 또 다행히 체력은 아직 버틸 만하다는 것도 자체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익명의 온라인 세상인데도 나는 내가 내 생각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데에 상당히 서투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쇼생크 탈출」에서 오랜만에 출소한 죄수들이 자유로운 현실세계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처럼이라고 말한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비슷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실패하는 것 같진 않다. 온라인 세상에 점점 더 익숙해지면서 은근 중독성 있는 즐거움을 느끼고 또 그 세상에 있는 나에 대해 심정적인 장애가 없다.


트레이닝 복에 운동화를 신고 음악을 들으며 한껏 자유로운 마음으로 동네 길을 걷는 나와 온라인 세상에 있는 여러 개의 나. 아무런 의학적 조치가 없는데도 그 양쪽의 세상에서 나는 때때로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생각도 달라졌다. 그냥 ‘편히 즐겁게 살자’에서 최대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자’로.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건강상의 별일만 없다면 최소한 앞으로 10년은 나의 인생 중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나날이 될 것 같다.

 

김미란 출판문화원 전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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