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세기가 21세기에게 19.물리학

특히 최근에는 중력파를 비롯해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중성미자 등

여러 종류의 신호를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다중 신호 천문학이 미래의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양자역학의 얽힘 현상은 독특한 비국소적 성질을 보이면서
양자컴퓨터, 양자 암호 등 양자 정보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타임지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세기의 인물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1879~955)을 선정했다. 인류는 모든 면에서 20세기에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지만, 아인슈타인이 상징하듯, 특히 물리학은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뤘고, 학문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명과 세계관 전체의 거대한 전환을 주도했다.  

원자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원자(atom)’다. 원자의 개념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에 등장했고, 근대과학의 원자 개념도 19세기에 확립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원자는 물리학의 중심 개념이 되었고 인간이 물질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됐다. 원자가 물리학의 중심이 된 이유는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잇달아 발견되거나 새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X선, 방사선,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의 흑체복사 이론,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 등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이전의 물리학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의 입자를 찾는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일과 연결된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 CERN)는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사이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입자 물리학 연구소로, 세계최대의 입자가속기를 갖고 있다.  사진출처=CERN
이전에도 물리학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었다. 뉴턴 역학의 정량적 성공은 일찍이 인간이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을 줬고, 물리 법칙의 보편성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뉴턴 물리학의 성공이 너무 강렬했기에 처음에는 원자를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정도다.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통찰이 실험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자, 물질을 연구하는 일은 100여 개 남짓한 원자를 이해하는 일이 되었다. 특히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1911년 원자의 내부에 원자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원자가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음을 밝혔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은 원자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 체계다. 양자(quantum)란 어떤 물리량이 마치 입자처럼 특정한 값만을 가진다는 의미다. 독일의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특정한 진동수를 가지는 빛의 에너지가 양자화돼 있다는 가정을 처음 도입했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는 러더퍼드의 원자를 설명하는 모형에서 수소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 상태를 이룬다는 것을 제안했다. 체계적인 양자역학 이론은 1925~1926년에 괴팅겐의 하이젠베르크(1901~1976), 취리히의 슈뢰딩거(1887~1961), 케임브리지의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 등에 의해 탄생했다. 이로써 원자의 세계를 정량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됐고, 또한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포괄하는 이론 체계인 양자 장 이론으로 발전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역학의 기본 원리인 상대성이 전기역학의 경우에도 성립하도록 했다. 나아가서 아인슈타인은 더욱 일반적인 가속운동을 할 경우의 상대성에 대해서 논하고,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기술해 물질과 시공간을 통합적으로 기술하는 장대한 이론을 완성했다. 이 이론을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며, 처음의 상대성은 가속운동을 하지 않을 경우에만 성립하므로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비로소 물리학이 우주 그 자체를 다룰 수 있게 됐다.    

원자핵 너머, 그리고 우주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원자가 물질의 기본 단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음이 확인됐고 원자핵을 이루는 힘은 전기력과는 다른 새로운 힘이며, 원자핵을 쪼개면 새로운 힘에 의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로서 원자력 시대가 시작됐고 원자폭탄이 탄생했다. 원자폭탄이야말로 과학과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20세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리학자들은 원자핵보다 더욱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분야를 입자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다시 쿼크라고 이름붙인 몇 종류의 더 기본적인 단위로 이뤄져 있음을 밝혀냈다. 현재까지의 탐구 결과에 의하면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전자와 같은 렙톤이라고 부르는 입자들과 쿼크들이고, 입자들 사이에는 네 종류의 힘이 매개된다. 네 종류의 힘이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중력과 전자기력, 원자핵을 이루는 힘인 강한 핵력,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입자의 종류를 바꾸는 약한 핵력이다. 쿼크는 강한 핵력을 통해 결합해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원자핵을 이루며, 원자핵과 전자는 전기력으로 결합해서 원자를 이룬다. 이러한 구조를 설명하는 양자 장 이론을 표준모형이라고 부르는데, 표준모형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실험 결과를 정확히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지식의 정수다. 
우주에 대한 지식 역시 크게 발전했다. 천체물리학에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발견은 허블(1889~1953)이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측해서 우주 공간이 팽창하고 있음을 발견한 일이다. 이러한 관측 결과와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한 시공간의 연구 결과, 현재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아주 작은 크기에서 시작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빅뱅 우주론을 발전시켰다. 빅뱅 우주론에서 초기 우주는 매우 작은 크기이므로 입자물리학으로 기술된다. 이렇게 물리학자들은 현재 관측 결과와 잘 부합하는 우주론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물성의 양자역학적 이해
양자역학을 통해 원자를 이해하게 되자 이제 과학자들은 물질을 이전보다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물질의 단단함이나 색깔과 같은 기초적인 성질부터 비열, 전기전도도, 자성 등과 같은 물리적인 성질, 그리고 화학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들을 포함해서 물질의 상태를 양자역학을 통해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질의 전자 구조를 자세히 알게 되면서 반도체, 초전도체 등과 같은 특별한 물질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됐다.
물질에 대한 미시적 이해가 기반이 되자 기술적 응용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레이저나 원자시계 등이 발명되고, 이러한 기술을 통해 실험 기술이 발전하면서 물성에 대한 이해는 더욱 정교해졌다. 특히 반도체를 이용한 트랜지스터 등 전자 회로 소자의 발전은 컴퓨터를 급속도로 발전시켜 왔다. 여기에 새로운 디스플레이와 CCD(빛 감지 디지털 소자) 등이 결합해서 20세기 후반의 문명의 모습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21세기의 물리학
21세기에는 물리학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까?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기술되는 중력의 양자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양자 중력 이론은 실제적으로 빅뱅 직후의 우주 초기나 블랙홀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미학적인 면에서 이론의 전체적인 내적 정합성을 위해서 필요하다. 입자물리학자들은 위에서 말한 미학적인 이유로 표준모형 자체도 완전한 이론이 아니라 그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궁극의 이론을 찾기 위해서, 가속기 실험이나 그 밖의 여러 실험에서 새로운 물리학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입자물리학의 당면 과제다. 현재의 거의 모든 데이터는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분야는 극히 드물다). 최근 가장 활발한 분야는 지상과 위성에서 수많은 새로운 실험들이 진행되거나 추진되고 있고, 또 계획되고 있는 천체물리학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력파를 비롯해서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중성미자 등 여러 종류의 신호를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다중 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이 미래의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양자역학의 얽힘(entanglement) 현상은 독특한 비국소적 성질(non-locality)을 보이면서 양자컴퓨터, 양자 암호 등 양자 정보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커다란 잠재력이 남아있는 분야다. 최근에는 원자 수준의 크기에서 물질의 제어가 가능한 나노기술이 발전해서 이론적으로 제시된 물성을 직접 구현할 수 있게 되어 물성의 이해도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20세기 물리학은 물질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식을 새롭게 정립해 줬다. 이를 기반으로 21세기에 물리학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상상하는 일은 예측하기조차 어려우며 그래서 더욱 흥분되는 일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입자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입자물리학의 여러 주제에 관해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보이지 않는 세계』『스핀』『불멸의 원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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