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옥렬의 미술로 읽는 세계사]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계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단점이다. 이 전쟁은 화약고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민족문제가 빌미를 제공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게르만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남슬라브계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민족이 소수를 형성한 인위적인 복합민족국가였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19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발칸반도에서 치세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1878년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했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예속돼 불만이 심했던 세르비아민족의 저항은 특히 격렬했다.   암살 사건이 발생한지 꼭 한 달이 지난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마침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러시아가 손을 잡았고(삼국 협상),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한편이 됐다. 순식간에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이 안고 있던 민족 간의 문제를 노출한 것이었다. 전쟁을 가능케 한 정신의 위기는 전쟁 중에 더욱 깊어졌고, 심정은 황폐해졌다. 서구문명은 위기를 맞았고, 아무도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말하지 못했다. 1918년 9월, 잔혹한 전쟁의 총성이 점점 약해질 때, 독감 바이러스가 참전 중인 군인과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기 전,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 대부분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전시 상황에서 언론검열 없이 상황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던 중립국 스페인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알려진 이 바이러스는 전장터의 젊은 군인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후방의 노약자나 어린이들까지 죽게 했다. 당시의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이 약 1천500만 명인데 비해 1918년 인플루엔자 대유행(pandemic)으로 사망한 이들은 5천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전쟁은 서둘러 종식됐고 평화조약도 맺어졌다. 한국에서는 흔히 무오년 독감(戊午年毒感)이라고 하는데, 740만여명이 감염돼 14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클림트와 실레1900년 전후의 비엔나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오스트리아와 빈의 예술, 문화, 역사, 디자인 분야에서 유명한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 출판사를 운영하는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는 자신의 책 『비엔나 1900』(박수철 옮김, 예경, 2013)에서 언론인이자 문학가인 바르(Hermann Bahr, 1863~1934)를 불러와 이 시대적 특성에 공명했다. 바르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데카당스(decadence)로 부르며 네 가지 특성을 거론했다. 첫 번째는 낭만주의 시대처럼 내적 존재를 발견하고자 하지만, 정신이나 감정보다는 신경과민을 표현하고, 두 번째는 인위적인 요소에 끌리는 성향과 세 번째는 신비적인 요소를 향한 열렬한 탐닉, 네 번째 특성으로는 ‘기괴한 것과 자유로운 것을 향한 지속적이고 채울 수 없는 이끌림’이라고 했다.1900년 전후의 비엔나를 대변하는 인물로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1856~1939)와 12음계를 창안한 작곡가인 쇤베르크(1874~1951), 그리고  건축예술에 대한 철학을 그의 저서 『꾸밈과 범죄(Ornament and Crime)』로 펼쳤던 로스(Adolf Loos, 1870~1933)가 있었다면, 철학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분석철학자인 비트켄슈타인(1889~1951)이 있다. 화가로는 비엔나의 우아함과 섬세함 그리고 허망하거나 과도한 몸짓의 표현으로 시대감성을 담고자 했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가 있다. 클림트의 총체예술과 「유디트 II」구스타프 클림트는 격변의 시대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광범위한 철학적 시도―디자인과 제조업의 실질적인 재통합에서부터 정치이념까지 범주화하는―가 이뤄진 비엔나의 총체예술을 열고자 했다. 클림트는 196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첫 회고전을 계기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또한 1986년에는 뉴욕 모마(MoMA)에서 비엔나 미술을 정리한 ‘비엔나 1900’전을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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