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시력을 잃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어두운 세상은 여전히 무섭다. 시각을 잃은 후부터 꿈을 자주 꿨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욕구는 꿈속에서 같은 장면으로 나타났다. 단발머리의 내가 어려운 시험 문제를 푸느라 끙끙거리는 모습이었다. 잠을 깨면 가슴 한편에 안타까움과 함께 알싸한 그리움 같은 것이 들어차곤 했다. 그것은 열망이라는 이름의 주체할 수 없는 병증으로 번져 가기만 했다. 시력이 전무한 나는 흰 지팡이를 짚으며 치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대로 사그라뜨리기에는 너무도 고운 내 안의 한 줄기 빛이었다.
2017년 초봄의 그 날, 나는 방송대에 3학년 편입학 서류를 제출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나의 고향 같은 국문학과에 다시 입학한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그만두게 된 후 접하지 못한 문학에 대한 갈망을 해결하고 싶었나 보다. 달라진 것이라면 까맣던 머리카락 대신 하얗게 센 머리털을 물들이고 경쾌한 발걸음 대신 흰 지팡이를 짚으며 조심스레 걷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었다. 시각장애로 자료수집에 어려움이 많을 것을 감안해서 학기 때마다 리포트 제출 과목이 아닌 출석수업 과목들만 골라 수강신청을 했다.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글 내용을 눈 대신 귀로 들으며 공부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반 컴퓨터에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깔아 두면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글이 써지면서 그 글자가 무엇인지 컴퓨터에서 일러 주기 때문에 학습이 가능했다. 방송대 중앙도서관이나 국립 장애인도서관에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컴퓨터 파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없는 파일은 도서관측에서 파일로 제작해서 보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전달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또 도서관측에서 소장한 것이 최근 파일이 아니라 묵은 것이어서 새 교재와 몇 군데가 다르다는 것도 나에게 커다란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로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긴장될 수밖에 없었고 의욕이 반감되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애타고 속상한 경우가 그것뿐이랴. 수업자료를 내가 가져간 USB에 흔쾌히 담아 주시는 교수님이 있는가 하면 저작권 운운하며 난색을 표하는 분도 있었다. 사정을 설명드렸지만 거절당했다. 시각장애인 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런 교수님의 경우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복지시스템과 교수 개인에 대한 원망과 졸업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또 낙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지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출석수업에서 녹음해 온 강의를 다시 듣고 일일이 키보드를 두드려 음성 파일로 만드는 일은 나에게 필수적인 항목이었다. 자연히 출석수업을 받은 후의 며칠 밤을 새우기 다반사였고 결국 대상포진을 혹독하게 경험하기도 했다.
계획했던 대로 2년 만에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 해냈다는 만족감과 이겼다는 승리감이 내 안에 들어찼다. 장애인 중에서 모범적이고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평생학습상도 타게 되었다. 다섯 개의 감각 중에서 시각의 불능은 공포감을 더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일반 학생들보다 시험과 과제물
에 대해 두려움이 더했던 나도 해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두려움에 맞서 싸워 얻은 승리의 열매를 따 보라고 말이다. 그 열매가 다시 씨가 돼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기원이 되는 경험을 꼭 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