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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허셜이 낫으로 풀을 베어둔 길

마리아 미첼이 포석을 다지며 나아갔고, 그 뒤로

베라 루빈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과 소수자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지평을 넓혀간 이야기.

 

 

색의 사용을 금지하는 퀘이커교 교도인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즐기게 해주고 싶어서 물을 채운 유리그릇을 거실에 매달았다. 햇살이 비칠 때면 거실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교리 위반에 유연한 아버지는 평등의 교리를 지키는 일에 용감했다. 흑인 노예들의 야간도주를 돕고, 노예들의 고통이 밴 목화옷 대신 어려운 살림에도 식구들에게 명주옷을 입혔다. 여성의 고등교육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19세기 초에 딸들에게도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고, 남녀 비율이 반반인 학교를 세웠다.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의 아버지 이야기다.
열다섯에 고등수학을 완전히 터득한 뒤 어디에도 진학할 학교가 없었던 마리아는 열일곱에 스스로 작은 학교를 열고, 유색인종 소녀들을 첫 학생으로 받아들인다. 10년쯤 뒤에는 남녀 동수로 구성된, ‘지성의 확장과 증진에 전념’하는 문학 모임을 만들었다. 배서대학(Vassar College) 최초의 천문학 교수가 되어 여성 천문학자들을 가르치게 된 마리아는 첫 수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마리아보다 100년쯤 늦게 태어난 한 소녀는 그녀의 전기를 읽고 삶을 뒤흔드는 깨달음을 얻는다. “별을 바라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과 여자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훗날 우주 암흑물질의 존재를 최초로 입증한 베라 루빈의 이야기다. 베라에게 마리아라는 별이 있었다면, 마리아에게는 허셜이 있었다.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이 아니라, 그의 여동생 캐럴라인 허셜이다. 왕립천문학회에서 금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캐럴라인은 고향에서의 ‘하녀’ 대신 다른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식구들이 2년 동안 신을 양말을 미리 떠놓는 열성으로 어머니를 설득해야만 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진리의 발견』에서 작은 조각 몇 개를 옮겨보았다. 불가리아 출신 문화비평가 마리아 포포바(Maria Popova)가 쓴 이 책은 부제 그대로 ‘앞서 나간 자들’의 특별한 전기다. 시대와 성별의 제약을 돌파해 여성의 지성을 증명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조하고 과학 발전에 중요한 궤적을 남긴 비범한 인물들의 지성사. 아니, 이런 요약으로 가둘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수많은 아름다움과 수많은 위대함이 얽히고설킨 “인간 존재에 대한 이례적인 모자이크화”. 역시 이런 표현으로도 충분하지는 않다.
캐럴라인 허셜이 “낫으로 풀을 베어둔 길”을 마리아 미첼이 “포석을 다지며 나아”갔고, 그 뒤로 베라 루빈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과 소수자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지평을 넓혀간 이야기. 그 도전과 분투의 서사는 ‘연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립된 개인이라는 것은 환상이며 우리의 삶은 다른 이의 삶과 얽힐책 만드는 편집자. ‘책세상’ 편집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1인출판사 ‘마농지’의 편집자 겸 마케터이다. 수밖에 없다. 포포바는 이 명료한 진실을 책과 일기와 편지라는 실증에 공감의 상상력을 더해 드러내 보인다. 케플러에서 레이철 카슨까지, 인물들 사이의 교차점과 연결고리들을 끝도 없이 이어가는 필력은 ‘이야기를 직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한다. “변혁의 횃불이 새로운 날을 밝히기 전의 어둠 속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성냥을 건네주던 그 희미한 인물들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들이 아름답다.
세계를 급습한 바이러스 앞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지금, 두 팔 뻗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어도,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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