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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이가 올해 전문대학교 2학년에 올라간다. 어쩌면 올 가을에는 어떤 여행사에 취직되었다고 알려올지도 모른다. 첫 월급을 타는 날에는 빵집에 가서 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나풀나풀 단발머리를 흩날리며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교직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선생님들이라면 흔히 경험하는 일이리라. 그러나 우리 정심이 이야기에는 퍽 남다른 구석이 있다. 스무 살 탈북소녀 정심이가 공부를 하겠다고 남북사랑학교를 찾아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2017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교무실에 앉아 있다가 정심이의 전화를 받고 정심이를 맞이하러 버스정류장으로 뛰어나갔다. 당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심이 말에 따르면 그날 나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두 팔을 활짝 벌려 정심이를 반겨주었다고 한다.
 
정심이는 전형적인 ‘공주병’ 소녀로 보였다. 마치 자기가 공주라도 된 양 알록달록한 옷차림에 얼굴도 예쁘게 꾸미고 나타났다. 약간 여윈 것을 제외하면 남한의 여염집 딸과 다름없었다. 입학 원서를 쓰고 학급 편성을 위해 영어와 수학 테스트도 했는데 공부 머리가 있는 아이였다. 당시만 해도 남북사랑학교에는 학생들이 몇 되지 않아서 정심이의 갑작스런 출현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정심이는 몸이 너무 약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일은 어떤 음식도 잘 먹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몸이 튼튼해지려면, 그리고 덜 아프려면 잘 먹어야 할 텐데 정심이는 도통 먹지를 못했다.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아이가 과연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진학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정심이가 북한에 있는 언니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우리 교사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다행히도 교내외 장학금이 연결되어서 정심이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어느덧 정심이는 공부 잘하는 당당한 여대생이 되었다. 작년 1학년 두 학기 과정을 평점 3.5 이상의 높은 학점으로 마쳤다. 교내 어학 경시대회에서는 1등을 해서 상금도 받았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경우를 묘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북한에서는 ‘소학교(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밖에 나오지 못하고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나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인생의 온갖 가시덤불을 헤쳐나온 정심이다. 스무 살 때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정심이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의 한국몽(韓國夢, Korean dream)은 ‘통역원’으로 나타났고,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다.
 
우리가 탈북청소년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정심이와 같은 아이들의 꿈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저 동토의 땅 북한의 아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너무 힘들어서 꿈을 포기하고만 싶었던 많은 순간들이 정심이한테도 있었지만 그런 위기들을 이겨냈다. 관심을 가지고 남모르게 돕는 손길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다. 정심이와 정심이를 도운 남한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서 이룬 이 일이야말로 ‘작은 통일’이다. 통일은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는 정심이 같은 10대와 20대 탈북청소년들이 1만3천 명이나 존재한다. 탈북청소년들을 돕는 일, 그것이 통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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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nd***
    누구보다도 통일이 되어서 남북한이 서로 경제적으로 윈윈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 청소년들을 위해서 봉사하는것도 기회가 된다면 해 보고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한가지 편견은 공산국가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것 처럼 그렇게 성실하거나 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런던에서 일할때 폴란드 직원과의 일을 누군가에게 말했을때 들은 말입니다. 공산국가 출신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은 상당히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러시아직원의 행동이라든지,부디 이런 저의 편견을 깰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04-16 14:11:27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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