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물음표(?), 질문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길을 걷다가 보는 자그맣고 노란 꽃 이름이 궁금해질 때도 있고, 늘 보던 나무 이름이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전에 없던 구름이 깃털처럼 피어오를 때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살랑이며 내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지, 목성은 왜 훌라후프처럼 고리를 감고 있는지, 넷이나 되는 위성 친구와는 언제 힘겨루기를 하는지, 보이저호의 우주 항해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질문은 차고 넘칩니다.

 

그런 순간에 손에 들린 휴대폰은 잠시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지요. 새롭게 여행하는 곳에서는 마을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혼자 생각하다가 아르키메데스처럼 벌거벗은 기쁨의 유레카를 외칩니다. 하늘은 왜 파래, 구름은 왜 구름이야, 별은 왜 빛나, 바다는 얼마나 넓어? 티 없이 맑은 눈을 한 어린아이의 꼬물거리는 질문을 받을 때는 어쩔 줄 모르면서도 그저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배웁니다. 울음소리로 배고픔을 말하는 것을 배우고 걷는 것을 배우고 실제로 말을 배우지요. 말을 배우고 나면 궁금한 것이 더 많아지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온전히 나를 아는 것은 아니어서, 밀려드는 호기심은 모험을 꿈꾸게 하고 피터팬처럼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그 배움길에서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길은 고속도로처럼 넓고 시원스레 뻗어갈 때도 있지만, 오솔길처럼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무한 경쟁은 배우는 즐거움을 잃고 휘청거리게도 하지요. 하지만 멈추지 않고 배움의 길을 가다 보면 나만의 세상이 문을 열고 또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길이 끝난 듯해 보이는 막막한 순간마다 새롭게 길이 열리고, 나침반처럼 배움이 나만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 줍니다.

 

그렇게 배움은 미지의 나에게서 온전한 나를 찾는 힘이 됩니다. 배움에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싱싱한 펄떡임과 힘이 있습니다.


덕구온천행에서 만난 교차로에 노을이 붉게 걸려 ‘노을 교차로’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붉은 노을이 노랗게 저무는 끝에 왕피천 계곡의 이정표가 새로운 배움의 길로 나를 이끕니다. 만학의 즐거움은 나이를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합니다. ‘그래, 좀 늦으면 어때?’ 저 노을과 더불어 아름답게 저무는 순간을 위해 오늘 다시 배움길을 떠납니다.

 

어느 생물학자의 통섭의 식탁처럼 맛깔난 12첩 반상, 나만의 식탁을 저리도 아름답게 저무는 노을 너머에 차려두겠습니다.